미드를 보게 되다 글자 막이 없이

 

[넷플릭스_현재 빠져있는 『 American Horror Story 』 ]

중학생 때였나? 처음 서울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에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호선을 겨우 발견하고 안도의 마음으로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와 영어로 대화하며 지나가는 내 또래의 여학생을 보았다.

‘와 진짜 멋있다’ 나도 저렇게 영어로 얘기해 보고 싶어’

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영어캠프나 외국인펜팔 등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문법만으로 영어 문장을 만들면서 재미와 아쉬움을 느꼈다.

대학 입학 후 인터넷 카페나 대외 활동을 통해 원어민 영어를 잘하는 내 또래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영어 말하기 학원에 등록해서 Hi, How are you? 부터 시작했다.

영어학원 초급반에서 의문문을 만드는 것도 서툰 자신을 보면서 언제쯤 나도 자유롭게 영어를 말할 수 있을까라는 한숨을 내쉰 것 같다.

대학 졸업 무렵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위해 토익학원을 다니며 800점대 후반의 점수를 달성했다. 그래도 내 진짜 영어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그 당시 펜팔사이트에서 만난 네덜란드인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는데 내 의견을 전달하려고 할 때마다 영어로 문장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계속하고 싶지 않아 영화 노팅힐을 50번 이상 보면서 영어 듣기와 대화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네이버 블로그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영국으로 출국한 블로거들의 글을 보게 됐다. 돈을 모으면 꼭 영어로 멋지게 석사를 마치고 취직하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때부터 퇴근길에 혼자 아이엘츠 공부를 했다.읽기·듣기는 아이엘츠 문제집의 제본을 떼고 4~5번 반복해서 풀었다. 글쓰기는 첨삭학원에 다닐 돈과 시간이 없어서 외국 사이트에서 가장 싼 첨삭 서비스를 찾아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재고 영어를 사용해 보고 첨삭을 받도록 했다. 스피킹은 밤 11시에 영국인 할아버지 선생님의 아이엘츠 스피킹 화상 강의를 들었다.나는 6개월 동안 매달린 끝에 시험을 치러 갔다. 아이엘츠의 Overall 점수가 6.5로 나왔다. 내가 목표로 했던 점수였다.

그 후 나는 다니던 화장품 회사를 그만두고 네덜란드에 있는 대학의 석사과정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블루베리 따기, 망고패킹, 40도 가까운 햇살 아래서 라임 따기, 3층부터 36층까지 계단을 뛰어다니며 아파트 청소, 회사 화장실 청소 담당자로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며 GMAT 공부까지 병행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손톱이 부서지고 정신병도 재발해 호주에서의 인생이 최악에 빠졌다. 미래를 함께 꿈꿨던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았다.

결국 모든 것을 접고 1년 반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그 무렵 호주는 큰 산불이 났고 하늘은 늘 빨갛고 거리 곳곳이 연기로 가득했다.

– 됐어. – 차라리 잘됐어.’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쏟아지는 눈물과 우울증 때문에 멍한 정신상태는 고삐처럼 날뛰며 얌전해질 줄 몰랐다. 이제 내 인생에 행복은 더 이상 없다는 듯 엄청난 눈물을 흘렸다.

나를 한국에 오게 한 이유를 떠올리며 저주했고, 나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하루하루 나를 망치면서 살아왔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긍정적인 상호작용도 없이 지내면서 철저히 나 자신을 이방인처럼 고립시켰다.주말에는 폭식을 하고 나서 방을 어둡게 해놓고 혼자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에 의해서 역류성 식도염도 발병했다.분노, 미움, 두려움으로 하루를 시작해 하루를 마무리했다.

호주에서 힘들게 저축한 1500만원은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취업준비를 위한 자금으로 쓰였다. 어차피 1500만원을 네덜란드 석사자금으로 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의 독거월세, 취업프로그램 교육비, 생활비 등에 모은 돈을 탕진하고 2주간의 실업자 생활을 거쳐 결국 내가 원하던 필드에 취직하게 됐다.

연봉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던 필드라 행복하게 살게 됐다. 벌써 8개월째가 돼.

그리고 나는 새로운 외국인 남자친구를 만났고, 올해 코로나가 조용해진 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또 나에게 남겨진 것이 있다면 자막 없이도 미국 드라마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내가기억한문장이실제로도드라마에서사용되었고또그런것들을깨닫으면서듣기와말하기연습을할수있게되었다.

내가 다시 해외로 나갈 기회가 오면 영어 때문에 발목이 잡히기 싫어 의식적으로 매일 아침 아이엘츠 글쓰기 공부를 하고 퇴근 후나 주말에는 자막 없이 넷플릭스를 시청한다.

들리지 않던 문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들리면서 주인공의 대사와 감정을 읽게 됐다. 이제 한글 자막 읽기에서 주인공의 연기를 놓치지 않는다.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문장이 들린다고 해서 좌절하지는 않는다.들리지 않으면 들리지 않은 채로 상황을 파악하면서 본다. 지금은 영어 잘하는 여학생을 시기한 어린 내가 아니라 자막 없이 미드를 보는 29세의 내가 존재한다.

고마워. 힘들게 살아온 길이지만 결국 그로 인해 나에게 남은 것이 다시 내 인생을 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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